프랑스 브르타뉴에서 신선한 식재료를 사는 곳 — 제가 자주 찾는 그랑프레
브르타뉴에서 2009년부터 생활하며 달라진 장보기 이야기입니다. 그랑프레에서 만나는 아시아 식재료와 신선한 과일·채소, 프랑스 치즈와 와인, 계절별 먹거리를 소개합니다.
2009년, 브르타뉴에서 시작한 새로운 생활
저는 2009년부터 프랑스 브르타뉴에 살고 있습니다. 프랑스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새로운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매일 먹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생각보다 큰 문제였습니다. 지금은 프랑스에서도 다양한 아시아 식재료를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당시 제가 사는 지역에서는 한국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찾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집 근처에는 규모가 큰 슈퍼마켓이 여러 곳 있었지만, 아시아 식품 코너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간장이나 쌀국수처럼 널리 알려진 제품은 가끔 찾을 수 있었지만, 제가 실제로 요리할 때 자주 사용하는 채소와 두부, 해조류 등은 종류가 많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발견하더라도 가격이 비싸거나 제가 원하는 제품과 달라서 그냥 돌아오는 날도 있었습니다.
결국 한국 음식을 제대로 만들고 싶을 때는 렌(Rennes)에 있는 아시아 식품점까지 차를 타고 가야 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렌까지 다녀오려면 운전하는 시간뿐 아니라 매장을 둘러보고 장을 보는 시간도 필요했습니다. 한두 가지 재료가 필요하다고 매번 먼 길을 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한 번 방문하면 간장, 면, 해조류, 양념처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식품을 한꺼번에 많이 사 오곤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아시아 식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 제가 가장 아쉽게 느꼈던 것은 특별하거나 복잡한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고수, 민트, 배추, 숙주나물, 두부, 팥처럼 한국과 아시아에서 평범하게 사용하는 재료를 가까운 곳에서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김이나 미역 같은 해조류는 일반 슈퍼마켓에서 찾아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고수와 민트는 프랑스 요리에서 아주 흔하게 사용하는 채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작은 묶음도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국이나 무침, 김치 등 다양한 요리에 사용하는 배추도 제가 원하는 크기와 상태로 찾기 어려웠습니다. 두부 역시 지금처럼 여러 종류가 판매되지 않았고, 단단한 두부와 부드러운 두부를 골라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렌까지 다녀와야 했던 아시아 식품점
렌의 아시아 식품점에 가면 반가운 재료가 많았습니다. 익숙한 포장과 한글이 적힌 제품을 보면 한국에서 장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장보기 한 번을 위해 오랜 시간 운전해야 했고, 필요한 물건을 빠뜨리면 다시 방문하기 어려웠습니다. 냉장식품과 신선한 채소는 이동 시간까지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구입할 때마다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도 집에 있는 재료에 맞춰 조리법을 바꾸는 일이 많았습니다. 숙주는 중국이나 태국 요리에도 많이 사용되어 가끔 구할 수 있었지만, 콩나물은 훨씬 찾기 어려웠습니다. 콩나물은 주로 한국 요리에 사용되는 식재료라서 프랑스의 일반 매장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필요한 재료를 모두 갖추기보다 프랑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품을 활용해 비슷한 맛을 내는 법부터 배웠습니다.
유기농 매장과 대형 슈퍼마켓을 함께 이용했습니다
다행히 유기농 매장에서는 일반 슈퍼마켓에서 보기 어려운 두부나 간장, 곡물과 콩 종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유기농 매장과 대형 슈퍼마켓을 번갈아 다니며 장을 보았습니다. 한 매장에서 필요한 것을 모두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채소는 슈퍼마켓에서 사고, 두부와 간장은 유기농 매장에서 구입하고, 한국 양념과 면류는 렌의 아시아 식품점에서 사 왔습니다.
이렇게 여러 매장을 찾아다니는 생활은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면 재료를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먼저 알아야 했습니다. 같은 상품이라도 매장에 따라 가격 차이가 컸고, 언제나 판매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요리보다 재료를 구하는 일이 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랑프레에서 주로 장을 봅니다
지금 제가 가장 자주 장을 보는 곳은 그랑프레(Grand Frais)입니다. 프랑스어로 ‘grand’는 크다는 뜻이고 ‘frais’는 신선하다는 뜻입니다.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중심으로 육류, 생선, 치즈, 유제품과 여러 나라의 식료품을 함께 판매합니다.
물론 한국 식재료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매장은 아닙니다. 고추장, 된장, 참기름처럼 한국 요리에 꼭 필요한 제품은 여전히 아시아 식품점이나 다른 매장에서 사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간장과 두부 등 일부 제품은 지금도 유기농 매장에서 구입합니다. 그러나 매일 먹는 채소와 과일, 버섯, 허브와 유제품은 그랑프레 한 곳에서 대부분 장만할 수 있어 생활이 훨씬 편해졌습니다.
전통시장을 떠올리게 하는 매장 구성
그랑프레는 일반적인 대형 슈퍼마켓과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하나의 넓은 매장 안에 과일·채소 가게, 정육점, 생선가게, 치즈 가게와 식료품점이 모여 있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의 전통적인 실내 시장인 알(halles)이나 마르셰 쿠베르(marché couvert)를 현대적으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을 줍니다.
각 코너는 취급하는 식품과 전문 분야가 분명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매장에 따라 정육, 수산, 식료품 등 일부 코너의 운영 주체도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소비자에게는 한 공간 안에서 여러 전문 상점을 차례로 방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카트 하나를 밀고 이동하면서도 채소 가게와 치즈 전문점, 정육점과 생선가게를 각각 둘러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과일과 채소는 색깔별로 풍성하게 진열되어 있고, 치즈 코너에는 모양과 크기가 전혀 다른 치즈가 길게 이어집니다. 정육 코너와 생선 코너에서는 계절과 입고 상황에 따라 판매하는 상품이 달라집니다. 필요한 물건만 빠르게 사러 갔다가도 처음 보는 과일이나 치즈를 발견하면 발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한국 요리에 필요한 채소가 많아졌습니다
제가 그랑프레를 자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채소와 허브를 비교적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찾기 어려웠던 고수와 레몬그라스가 이제는 그리 낯선 재료가 아닙니다. 숙주나물과 배추도 살 수 있어 볶음요리, 국수와 김치 등을 만들기가 쉬워졌습니다.
김치를 담그고 싶을 때 배추를 가까운 매장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제게 꽤 큰 변화입니다. 프랑스에서 판매되는 배추는 한국의 배추와 크기나 수분, 잎의 단단함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금에 절이는 시간과 양념의 양을 상태에 맞게 조절해야 합니다. 완전히 같은 재료는 아니더라도 신선한 배추를 손쉽게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반갑습니다.
숙주나물과 다양한 버섯
숙주나물은 한국과 다른 아시아 요리에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살짝 데쳐 무치거나 볶음요리에 넣을 수 있고, 쌀국수나 팟타이에도 잘 어울립니다. 숙주가 아삭한 상태인지 확인하고 필요한 만큼만 구입할 수 있어 편리합니다. 팟타이와 같은 아시아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식재료와 관련 제품도 전보다 쉽게 눈에 띕니다.
버섯 코너도 제가 좋아하는 곳입니다. 프랑스에서 흔히 먹는 양송이버섯뿐 아니라 표고버섯과 팽이버섯처럼 한국 요리에 익숙한 버섯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계절과 매장에 따라 판매되는 종류는 달라지지만 여러 모양과 향을 가진 버섯을 한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습니다. 표고버섯은 국이나 볶음, 잡채에 사용할 수 있고 팽이버섯은 전골과 찌개에 넣기 좋습니다.
한국 컵라면까지 만나는 변화
요즘에는 매장에서 한국 컵라면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2009년 무렵에는 한국 라면을 사기 위해 아시아 식품점을 찾아가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무척 큰 변화입니다. 한국 음식과 문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면서 프랑스의 식료품 매장에서도 한국 제품이 조금씩 익숙한 상품이 되었습니다.
모든 한국 제품이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상품 구성은 매장과 시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도 평범한 장보기 중에 한글이 적힌 컵라면이나 아시아 식재료를 만나는 순간은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한국에서 온 사람에게는 익숙한 음식이지만, 프랑스 소비자에게는 새로운 맛을 발견하는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 제게 조리법을 물어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표고버섯을 어떻게 요리하면 좋은지 알려 드리기도 합니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과일과 채소 코너
그랑프레의 과일과 채소 코너에는 프랑스에서 생산된 제철 농산물과 세계 여러 지역에서 온 식품이 함께 진열됩니다. 여름에는 수박과 멜론, 복숭아와 살구가 풍성하고, 가을에는 사과와 배의 종류가 많아집니다. 저는 익숙한 과일뿐 아니라 평소에 자주 보지 못하는 열대과일과 섬 지역의 채소를 구경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나시배와 후지 사과
한국의 배와 비슷한 동그란 나시배(nashi)를 프랑스 매장에서 발견하면 반갑습니다. 프랑스의 서양배는 길쭉한 모양이 많고 잘 익으면 과육이 부드러워집니다. 반면 나시배는 수분이 풍부하고 아삭한 식감이 있어 한국에서 먹던 배를 떠올리게 합니다.
한국에서 ‘부사’라고 부르는 후지 사과도 만날 수 있습니다. 달고 단단하며 아삭한 사과를 좋아하는 저에게 잘 맞습니다. 프랑스에는 지역과 계절에 따라 다양한 사과가 나오기 때문에 각각의 맛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익숙한 후지 사과를 고를 때도 있지만, 향이 좋은 프랑스 품종을 새로 맛보기도 합니다.
열대과일과 낯선 채소는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하는 기분을 줍니다. 다만 멀리서 운송된 식품이라고 해서 언제나 완벽한 상태인 것은 아니므로 색과 향, 단단함을 직접 확인해 고르는 편입니다. 신선식품은 계절과 입고일에 따라 품질과 가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제품과 신선한 파스타
그랑프레에서는 아시아 식재료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장바구니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즐겨 먹는 식품입니다. 제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부라타, 트러플 크림과 생면 파스타입니다.
부라타와 트러플 크림
부라타(burrata)는 겉은 모차렐라처럼 보이지만 자르면 안에서 부드러운 치즈와 크림이 흘러나옵니다. 토마토와 바질, 올리브오일만 곁들여도 맛있는 한 접시가 완성됩니다. 여름에는 차갑게 준비한 토마토와 함께 먹고, 빵을 곁들이면 복잡한 요리를 하지 않아도 만족스러운 식사가 됩니다.
트러플 크림은 파스타나 리소토에 조금만 넣어도 향이 풍부해집니다. 버섯과 크림을 함께 넣은 소스에 사용하거나 구운 빵에 얇게 발라 먹어도 좋습니다. 향이 강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많이 넣기보다 조금씩 더하며 맛을 조절하는 편이 좋습니다.
시간이 없을 때 편리한 생면
생면 파스타는 건면보다 익는 시간이 짧고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있습니다. 속을 채운 라비올리나 탈리아텔레 등 종류가 다양해 바쁜 날 식사를 준비할 때 편리합니다. 생면에 트러플 크림이나 버터, 치즈를 곁들이면 간단하지만 특별하게 느껴지는 요리가 됩니다. 저는 특히 카르보나라를 만들 때 트러플 크림을 즐겨 사용합니다.
이처럼 제 장바구니에는 한국 요리에 필요한 배추와 숙주, 표고버섯이 들어가고 그 옆에는 부라타와 생면 파스타가 놓입니다. 프랑스에서 오래 살면서 제 식생활도 자연스럽게 달라졌습니다. 한국의 맛을 잊지 않으면서 프랑스와 유럽의 식재료를 즐기는 것이 지금의 평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풍부한 치즈 문화를 만나는 곳
프랑스에는 ‘일 년 내내 매일 다른 치즈를 먹을 수 있을 만큼 365가지 치즈가 있다’는 유명한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치즈의 정확한 개수를 뜻한다기보다 프랑스 치즈의 놀라운 다양성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실제 치즈의 종류와 지역별 변형까지 생각하면 그 수는 훨씬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치즈는 사용하는 우유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소젖으로 만든 치즈가 있는가 하면 염소젖이나 양젖으로 만든 치즈도 있습니다. 겉껍질을 씻으며 숙성하는 치즈, 흰곰팡이로 덮인 치즈, 푸른곰팡이가 들어간 치즈, 단단하게 오래 숙성한 치즈 등 만드는 방식도 다양합니다.
지역의 이름과 이야기를 담은 치즈
한국인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프랑스 치즈로는 콩테(Comté)가 있습니다. 콩테는 주로 프랑스 동부 쥐라 산악 지역에서 생산되는 단단한 치즈입니다. 숙성 기간에 따라 향과 맛이 달라지고, 어린 콩테는 비교적 부드럽지만 오래 숙성한 치즈에서는 견과류와 향신료를 떠올리게 하는 깊은 풍미가 느껴집니다.
카망베르 드 노르망디, 로크포르, 뮌스터처럼 프랑스의 많은 치즈 이름에는 생산지의 지명이나 지역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AOP는 원료의 생산부터 가공과 숙성까지 정해진 지역과 방식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보호하는 유럽의 원산지 명칭입니다. 따라서 치즈 포장에 적힌 이름은 단순한 상품명이 아니라 그 치즈가 태어난 장소와 제조 전통을 알려 주기도 합니다.
그랑프레의 치즈 코너를 천천히 살펴보면 프랑스 지도를 음식으로 여행하는 듯합니다. 치즈마다 모양과 색, 껍질과 향이 다르고 지역별 특징도 뚜렷합니다. 처음에는 종류가 너무 많아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어렵지만, 조금씩 맛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우유의 종류와 숙성 정도를 알아 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프랑스 치즈뿐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스페인의 만체고, 여러 종류의 이탈리아 치즈, 영국의 체더 등 다양한 나라의 치즈를 살 수 있어 편리합니다.
와인 이름을 알면 프랑스 지리가 보입니다
그랑프레에서는 음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여러 지역의 와인도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와인을 처음 접하면 라벨에 적힌 이름이 포도 품종인지, 회사 이름인지, 지역 이름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실제로 프랑스 와인의 많은 이름은 포도밭이 있는 지역이나 마을, 원산지 명칭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보르도와 생테밀리옹
보르도(Bordeaux)는 프랑스 남서부의 도시 이름이면서 그 주변의 넓은 와인 생산지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보르도 안에는 다시 여러 세부 산지와 원산지 명칭이 있습니다. 그래서 보르도 와인이라고 해도 어느 지역에서 생산되었는지, 어떤 포도 품종을 혼합했는지에 따라 성격이 크게 달라집니다.
생테밀리옹(Saint-Émilion)은 보르도 와인 산지 안에 있는 아름다운 마을의 이름이며, 동시에 그 주변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원산지 명칭입니다. 즉 병에 적힌 ‘Saint-Émilion’은 단순히 멋있게 만든 브랜드명이 아니라 와인이 태어난 장소와 생산 규칙을 나타냅니다.
샴페인도 지역에서 시작된 이름입니다
샴페인(Champagne)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는 거품이 나는 와인을 모두 샴페인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정해진 규정과 방식에 따라 생산된 발포성 와인의 보호된 명칭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만든 발포성 와인은 프랑스에서 크레망(crémant)이나 뱅 무스(vin mousseux)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
와인 이름이 지역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라벨을 보면 프랑스 와인이 조금 덜 어렵게 느껴집니다. 한 병의 와인은 단지 음료가 아니라 토양과 기후, 포도 품종, 생산 방식과 지역의 전통을 담고 있습니다. 치즈와 와인을 통해 프랑스의 여러 지역을 알아 가는 것도 장보기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입니다.
계절이 바뀌면 매장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프랑스에서 장을 보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식탁에서 먼저 느낄 때가 많습니다. 봄에는 아스파라거스와 딸기가 눈에 띄고, 여름에는 토마토와 멜론, 수박과 복숭아가 풍성해집니다. 가을에는 사과와 배, 호박과 버섯이 늘어나고 겨울에는 따뜻한 요리를 위한 식품이 앞쪽에 진열됩니다.
겨울이 오면 라클렛과 퐁뒤
날씨가 추워지면 라클렛(raclette)용 치즈가 다양한 맛으로 등장합니다. 기본 치즈뿐 아니라 후추, 허브, 훈연 향 등이 더해진 제품도 볼 수 있습니다. 라클렛 기계에 치즈를 녹여 감자와 햄, 샤퀴트리, 피클과 함께 먹는 시간은 프랑스 겨울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입니다.
퐁뒤용 치즈도 겨울에 잘 어울립니다. 여러 치즈를 와인과 함께 녹인 뒤 빵을 찍어 먹는 퐁뒤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천천히 즐기는 음식입니다. 한국의 전골처럼 한 냄비를 가운데 두고 함께 먹기 때문에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있습니다. 다음에는 시어머니께 배운 퐁뒤 레시피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 때 가장 화려해집니다
제가 그랑프레에서 계절의 분위기를 가장 강하게 느끼는 때는 크리스마스 전입니다. 평소보다 치즈와 축제용 음식의 종류가 많아지고, 정육 코너에는 샤퐁(chapon)과 같은 크리스마스 요리용 육류가 등장합니다. 샤퐁은 특별히 사육한 수탉으로, 프랑스에서는 가족이 모이는 연말 식사에 구워 먹기도 합니다.
트러플과 트러플을 활용한 제품, 특별한 소스와 전채요리도 평소보다 많이 보입니다. 치즈 코너는 더욱 풍성해지고 식탁을 화려하게 꾸밀 수 있는 상품이 늘어납니다. 크리스마스 음악이나 장식이 없어도 진열된 음식만 보면 연말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는 선물뿐 아니라 오랫동안 준비한 식사를 가족과 나누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연말 식품 코너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프랑스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저는 꼭 구입하지 않더라도 처음 보는 치즈와 트러플 제품, 축제용 요리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식탁이 만나는 나의 장바구니
2009년에는 한국 음식을 만들기 위해 렌까지 차를 타고 가야 했습니다. 가까운 슈퍼마켓과 유기농 매장을 여러 번 방문해도 필요한 재료를 모두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장을 보는 데 시간과 힘이 많이 들었고, 재료 하나가 없어 만들고 싶은 음식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랑프레에서 배추와 숙주나물, 고수, 레몬그라스, 표고버섯과 팽이버섯을 사고, 같은 날 부라타와 트러플 크림, 생면 파스타, 프랑스 치즈와 와인도 고릅니다. 필요한 간장이나 두부는 유기농 매장에서 보충합니다. 모든 것을 한 매장에서 해결하지는 않지만 예전보다 장보기가 훨씬 편하고 즐거워졌습니다.
그랑프레를 소개한다고 해서 모든 상품이 항상 저렴하거나 모든 매장의 구성이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선식품의 가격과 품질, 원산지와 재고는 계절과 매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직접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양만 구입합니다. 특히 수입 과일이나 평소 가격이 높은 식품은 다른 매장과 비교해 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한 공간에서 프랑스의 제철 식품과 세계 여러 나라의 재료를 함께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요리를 위한 장보기와 프랑스 생활을 위한 장보기가 더 이상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에게 장보기는 단순히 냉장고를 채우는 일이 아닙니다. 프랑스에서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불편함과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진 식문화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한글이 적힌 컵라면을 발견하고 반가워하다가 바로 옆에서 새로운 프랑스 치즈를 고르는 것이 지금의 제 모습입니다.
한국 음식과 프랑스 음식 가운데 하나만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김치를 담그기 위해 배추를 사고, 저녁에는 부라타와 토마토를 먹을 수 있습니다. 잡채에 넣을 표고버섯을 고른 뒤 주말 라클렛을 위한 치즈를 함께 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음식이 한 장바구니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납니다.
프랑스에서 생활하거나 여행하면서 현지인의 일상적인 장보기가 궁금하다면 식품 매장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은 경험입니다. 화려한 관광지에서는 알기 어려운 계절의 변화와 지역의 맛,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랑프레와 유기농 매장, 때로는 아시아 식품점을 오가며 장을 볼 것입니다. 예전처럼 먼 길을 자주 가지 않아도 한국의 맛을 이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습니다. 동시에 프랑스의 수많은 치즈와 와인, 계절마다 달라지는 과일과 채소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계속 누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프랑스에서 오래 살아온 제가 지금 장을 보는 방법입니다.